영화 ‘식객’은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 중 한 명인 허영만 화백의 동명 원작 만화를 스크린으로 이양한 작품이다. 허영만 화백은 일본만화 <맛의 달인>을 읽으면서 한국에 이런 요리만화가 없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음식에 관한 만화인 <식객>을 준비하게 됐다. 작품을 준비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며 유명한 음식점을 두루 섭렵하고 경험하며 충실하게 자료조사를 했다고 한다. 그만큼 영화 <식객>은 원작만화에게 여러 모로 큰 빚을 지고 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하제일의 맛, 칼의 주인은?

혀끝이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맛이야말로 궁극적인 요리의 비전이다. 영화 <식객>에서 말하는 요리 철학이란 이렇다. 이는 영화 <식객>이 오감으로 감지될 수 있는 육감적인 재미보단 내면적인 정서로 녹아드는 감동의 경지를 표방하겠다는 영화적 선언처럼 보인다. 일단 <식객>은 확실히 관객의 입맛을 돋우는 영화다. 리드미컬한 도마질 소리와 형형색색의 천연재료, 섬세한 요리사의 손질까지, 시각과 청각을 통해 돋울 수 있는 미각적 자극을 충실히 구현해내려 노력한다. 또한 요리 장면을 분할된 화면으로 나눠 담아내면서 만화 원작 영화라는 뿌리를 각별하게 표현해내려는 노력이 돋보이기도 한다.

일단 <식객>의 주된 내용은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의 수라상을 차린 궁중조리사 대령숙수가 썼던 칼의 주인공을 찾기 위한 요리 경연 과정에 있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한국 전통요리의 대들보나 다름없다는 운암정이라는 전통요리점의 차기 주방장을 뽑는 과정에서 황복 요리를 내놓은 차기 주방장 후보 성찬(김강우)이 제독에 실패했다는 누명을 쓰고 주방에서 떠난다. 그리고 그의 라이벌이었던 봉주(임원희)가 운암정의 새로운 주방장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일본인으로부터 기증 받은 대령 숙수의 칼의 새로운 주인을 찾기 위한 요리 경연이 열리고 지인의 간곡한 설득과 봉주의 비열한 경계에 자극을 받은 성찬은 경연에 참여하기로 한다.

사실 <식객>은 서사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아니다. 시간에 쫓기듯 산만하게 진행되는 요리 경연의 묘미는 다소 밋밋하고 이색적이며 다채로운 요리라는 소재가 두 인물의 대결구도를 그리기 위해 평면적으로 나열되는 도구에 불과해 보인다는 건 요리가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던 원작을 생각한다면 아쉬운 선택이다. 물론 원작만화와 영화를 차별화시키기 위해 일제 치하 조선말에 충절을 지켰다는 대령 숙수의 칼을 내걸고 시대적인 정서를 영화적 감흥으로 끌어안고자 한 것은 영화적 비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조사가 빠진 문장처럼 자연스럽지 못한 장면들의 연결이 눈에 띄는 전반부의 흐름은 어딘가 아쉽다.

생사를 좌우하는 음식 한 그릇

하지만 <식객>이 은연중에 드러내는 전통에 대한 복원 의지는 주목할 만하다. <식객>의 결말은 끊어지는 전통의 명맥을 복원하고 왜곡된 역사적 정통성에 일침을 가하는 인상인지라 일말의 쾌감이 느껴진다. 특히 호쾌하면서도 소박한 맛이 담긴 육개장이 우리의 전통성과 맞닿아있다고 소개하는 결말부는 한국적인 맛에 대한 고민을 거듭해온 어떤 이들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되새기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식객>에서는 경연을 준비하는 요리사들이 최고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식재료에 따른 최선의 레시피를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요리라는 것이 주방에 서기 이전부터 음식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고기를 잘 굽기 위해 좋은 숯불을 준비하는 것도 요리의 과정이며, 육질이 좋은 소고기를 구하기 전에 잘 길러진 소를 알아보는 것도 요리의 과정이다. 어쩌면 요리사의 비전 역시 손끝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식객>은 훌륭한 음식에 담긴 정성이란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최선을 다한 작품처럼 보이기는 한다. 훌륭한 재료만큼이나 중요한 건 재료를 대하는 사람의 진심 어린 마음이며, 탁월한 요리 기술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러한 요리 기술이 누구를 위해 발휘되는가를 아는 진실한 태도일 것이다. 결국 대령 숙수의 칼을 앞에 두고 벌이는 두 사람의 대결 끝에 선택되는 승자도 그러한 진심과 진실을 보여주는 한 그릇의 음식을 통해서 판가름 난다. 덕분에 연출적으론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구수한 정서적 포만감이 느껴져 끝내 외면하기가 어렵다. 또한 음식을 잘못 다루면 단순히 먹는 이의 실망뿐만 아니라 생사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단순한 교훈까지 얹어주니 여러 모로 요리하는 이들에게 있어선 한번쯤 목격해야 할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글_ 민용준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올레TV <무비스타소셜클럽>의 배우 인터뷰 코너에 출연 중이며 KBS와 EBS 라디오에서 영화 소개 코너에 출연 중이다. 영화를 비롯해 대중문화와 세상만사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