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느껴진다'란 말은

입으로 내뱉거나 손으로 쓰고 나면 진부하거나 상투적으로 들리거나 읽힐 때가 있다. 하지만 종종 그렇게 말하거나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실상 그런 마음으로 그런 진심이 와 닿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진심이란 인간과 인간 사이를 더욱 돈독하고 애틋하게 발효시키는 효모와도 같은 노릇을 한다. 당장은 몰라도 끝내 그것이 진심이었음을 알게 만들고야 마는 그 마음은 때론 직접적인 언어가 아닌 뜻밖의 언어를 통해 전달되기도 한다. 그리고 현존하는 일본의 거장 감독으로 꼽히는 가와세 나오미의 연출작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바로 그런 진심에 관한 이야기다.

한 남자가 있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남자는 수건 하나를 어깨에 얹고 어디론가 나선다. 그리곤 작은 점포의 문을 열고 들어가 어깨의 수건을 머리에 동여매고, 앞치마를 두르더니 스테인리스 양푼에 달걀을 하나씩 까 넣기 시작한다. 달걀을 반죽해 빵을 만들기 위해, 보다 정확하게는 도라야키를 만들어 팔기 위해서다. 도라야키는 달걀을 반죽한 뒤 철판에 둥글고 얇게 구운 두 장의 빵 사이에 팥소를 넣은, 일본의 전통적인 단팥빵이다. 그리고 그 남자 센타로 (나가세 마사토시)는 도라야키를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 어느 날 센타로에게 한 할머니가 찾아와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고 싶다고말한다. 딱히 지원자도 없는 상황이지만 얼핏 보기에도 나이가 적지 않은 노인에게 일을 시킨다는 게 내키지 않아서 거절한다. 하지만 간곡하게 부탁하던 할머니는 센타로에게 자신이 만들었다는 단팥을 전해주고 돌아간다. 그리고 할머니가 남겨준 단팥에 손가락을 찍어 맛보던 센타로는 놀란 표정으로 다시 손가락을 찍어 단팥을 맛본다. 그러니까 보통 단팥이 아니었던 거다. 그리고 다음날 센타로는 다시 가게로 찾아온 할머니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안하고 두 사람은 함께 도라야키에 들어갈 단팥을 만들기로 한다.

도라야키에 필요한 재료란 잘 반죽해 먹기 좋게 구운 빵과 잘 끓여낸 단팥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달걀과 팥이 있으면 된다. 그러나 맛 좋은 팥소를 만들어 낸다는 건 생각만큼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서 도라야키를 파는 센타로는 자칫하면 타 버리거나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도라야키의 팥소가 될 단팥을 만드는 대신 공산품을 주문해 왔다. 어떻게 해야 좋은 단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좋은 단팥을 만드는 비법을 아는 할머니 도쿠에(키키 키린)가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좋은 단팥을 만드는 비법이란 딱히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만만한 것도 아니었다. 시간을 기다리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 그러니까 좋은 단팥은 주문을 외우듯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전날 물에 불려놓은 품질 좋은 팥을 체에 거른 뒤 물에 끓이고, 다시 체에 거른 뒤 물에 헹궈 한번 씻어준 후 다시 깨끗한 물에 넣어 끓여낸다.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끓인 팥을 식히면서 뜸을 들인 뒤 끊인 팥이 담긴 물이 투명해질 때까지 찬물을 살살 틀어 흘려보낸 뒤 다시 팥을 체에 거른다. 그리고 골고루 당분을 섞은 물에 다시 팥을 붓고 한참을 끓여낸다. 끊이는 와중엔 팥이 타지 않도록 주걱으로 저어주되 팥이 으깨지지 않도록 천천히 저어야만 한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에 물엿을 넣고 다시 천천히 저어주면서 끓여낸다. 그렇게 단팥이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은 영화상에서 성실하고 흥미롭게 묘사된다. 왜냐하면 정말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단순히 맛있는 도라야키를 팔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도, 할머니가 단팥을 잘 만드는 비법이 무엇인지를 쫓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도라야키를 만들기 위해 좋은 단팥을 끓이는 과정이 중요한 건 이 순간이 두 사람의 인생이 남다른 기억으로 남거나 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성을 다해 만든 단팥 덕분에 도라야키도 부리나케 팔린다. 하지만 인생이 그리 만만하진 않다. 할머니와 남자에겐 저마다의 사연과 비밀이 있다. 단팥 만드는 법도 모르는 남자가 도라야키를 팔게 된 데에는 나름의 연유가, 누구보다도 기가 막히게 맛 좋은 단팥을 만들 줄 아는 할머니가 푼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길 자처하는 데에도 그럴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연유와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 까닭 사이에서 할머니와 남자는 단팥을 끓이고, 도라야키를 굽는다.

제대로 된 단팥을 처음 끓여본 남자에게 할머니는 팥을 "극진히 모셔야 한다" 고 말한다. 이유는 이렇다. "힘들게 와줬으니까. 밭에서 여기까지." 그렇다. 우리가 먹는 모든 것들은 살아있는 것이었다. 단팥이 되기 전까지 팥 한 알마다 자신만의 생을 살아온 것이다. 팥이 있었기 때문에 단팥도 있는 것이고, 도라야키도 있는 것이다. 단팥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고, 도라야키를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도쿠에가 센타로가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팥이 있어서, 단팥을 만들 수 있어서, 도라야키를 만들 수 있어서였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좋은 단팥을 끓여 맛있는 도라야키를 만들어내듯 두 사람의 만남은 각자의 인생에서 덜어내거나 끌어올릴 수 없었던 통증과 고민을 치유하고 해소하는 계기가 된다. 그건 정성을 다해 팥을 끓여내는 것처럼 진심을 다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단팥을 만들어내기 위해 오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것처럼 좋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긴 인생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어떤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때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기도 하고, 평범한 누군가에게 허락된 당연한 권리마저 누릴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하지만 인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어디론가 흘러가기 마련이다. 어쩌면 "좋은 단팥은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물음의 답은 "좋은 인생은 어떻게 살 수 있는가?"라는 물음의 답과 비슷할 것이다. 정성을 다해 팥을 끓여내듯, 스스로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진심으로 대할 것. 그렇게 정성을 다해 만들어낸 단팥이 들어간 도라야키가 주는 소소한 따뜻함처럼, 진심으로 대한 자신의 시간을 보내며 어려움을 견뎌낸 인생 또한 누군가에게는 일말의 위로가 되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이렇게 소소하지만 달콤한 용기를 안겨주는 영화다. 한 입 베어 물게 되면 금세 다 먹게 될 거다.

글_ 민용준
영화 칼럼니스트이자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올레TV <무비스타소셜클럽>의 배우 인터뷰 코너에 출연 중이며 KBS와 EBS 라디오에서 영화 소개 코너에 출연 중이다. 영화를 비롯해 대중문화와 세상만사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